전역 단상
Medical Officer 2009/04/20 22:47
전역 전일. 대대장님께 전역 기념패를 받고 여단장님과 저녁 식사를 하였다.
이런 이야기를 하긴 좀 뭐하지만 많은 수 군인들의 특징이라면 떠날때'만' 잘해준다는 것이다. 전역전에 하는 온갖 노고 치하와 축하를 듣곤 하면 과연 '이 사람들이 진심으로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어떻게 평소에 나에게 그렇게 대할 수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라 생각하는건지. 아니면 전역 후에 민원이라도 넣을까봐 그러는지. 물론, 여기에 적힌 현 대대장님은 군생활 3년동안 만난 지휘관들 중 제일 좋은 분이므로 제외.
휴가를 끝내고 부대로 복귀한 아침, 마치 군 부대를 방문한 일반인의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모든 풍경이 그리도 생경한지..
병원에 있은 며칠 간의 생활이 군대라는 곳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한 것 같다.
저녁에 부대를 나서며 2년간 있었던 군의관실 문을 닫고 나오는데, 빈 군의관실을 보면서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치솟았다.
채 세네평이나 될까. 그런 조그마하고 허름한 공간에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고민과 결정을 했었다는 사실에..
더구나 그 공간은 의무대를 옮기며 내가 직접 도안하고 작업하여 만든 공간이었기에 더 정이 갔으리라. 그 공간에서 내 인생의 많은 중요한 일들을 고민하고 결정했던 것 같다. 진로에 대한 고민, 미국의사국가고시 시험 준비, 연애와 결혼에 대한 진지한 고찰, 성형외과 합격의 소식. 그 모든 일들이 그 방에서 이뤄졌다. 아무튼 허름하고 방음도 안되고 단열이라는 말이 사치로 느껴질 정도의 그 공간임에도 나름 정이 많이 들었나보다. 군생활을 그렇게 싫어하였음에도 그런 섭섭한 감정을 느낀 것을 보면.
군대에 처음 왔을때는 27세였는데, 군생활을 끝내는 지금. 30대가 되었다.
20대의 마지막을 함께한 군대.
아직도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군대에 가야 겠다는 결정을 내리던 인턴시절의 생각이 생생하다. 난 이 병원이 맞지 않는다고, 잘 할 자신이 없다고, 이곳에서 의사가 하고 싶지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남들이 다 말림에도, 갈 수 있는 곳이 많았음에도 끝끝내 뿌리치고 군의관으로 오던 그날을 기억하는데..
인턴때 생긴 back pain과 knee pain으로 찍은 MRI사진과 윤도흠 선생님의 소견서를 들고 처음 대전 군의학교로 신검을 받으러 가던 기억. 그곳에서 새벽 4시경에 찬혁이와 나와서 첫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던 기억. 버스타고 학교 앞을 지나다가 핸드폰으로 확인한 ARS에서 육군으로 배정되었다는 메시지를 들었던 기억. 3사에 처음 입소할때 머리를 빡빡깎고 들어가면서 '그래. 내가 원하던 것들 모두 이루고 말리라'고 다짐했던 기억. 힘든 훈련 기간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ventilation하던 기억. 사격 훈련에서 20발중 19발 맞췄던 기억. 양평쪽 부대에 배치받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적응장애'를 느꼈던 기억. 매일매일 사는게 미치도록 힘들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차라리 이렇게 사느니 죽는게 낫겠구나 싶었던 기억. 그럼에도 '나는 내 스스로 선택해서 온 것이야'라고 생각하면서 의사로서의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 무척이나 애썼던 기억. 퇴근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와서 혼자 식사를 해먹으며 공부를 하다가 뒤를 돌아보면 텅 빈 방에 나만 외로이 있는 그 현실에 남몰래 눈물도 흘렸던 기억. 군대와서 '그래. 나는 의사야.'라는 생각을 잃게 해주지 않았던 고마운 시험, USMLE 시험을 처음 보던 기억. 군의관 1년차 마지막에 병사 하나가 자주포에 압사하여 그 뒷수습을 하던 기억.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인격모독을 하던 지휘관에 대한 기억. 2년 여간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성형외과를 해야 겠다는 결심을 하던 그 순간. 교수님들께 인사를 다니면서 교수님들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 일희일비 하던 기억. 면접때 자화상을 그리게 한다고 군의관실에 앉아서 몇날 몇일동안 잘 그리지도 못하는 그림을 그리며 A4용지 수십장을 쓰던 기억. 지금의 여자친구를 보고 싶다고 매일 밤 늦은시간에 몰래 여자친구를 만나러 다녔던 기억. 군의관 모임을 조직하여 정기모임을 주최하던 기억.
적어보면 참 많은 일들이 군생활 동안 있었고..
군대라는 곳이 나를 참 많이도 변하게 만들었다. 특히나 '인생의 가치'란 것에 대한 생각을 참 많이도 바꿔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원하는 과에 합격하기만 한다면 참 행복할 줄 알았는데..
기쁘기도 하지만, 아쉬움과 슬픔이 교차하는 묘한 기분의 오늘이다.
군대에 있는 동안 '부정(denial)'이라는 방어기제를 참 많이도 썼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군생활에 대한 기록사진이 거의 없는데..
저 촌스런 전역패가 내 군생활을 증명하는 몇 안되는 기록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전역패를 해주겠다고 했을때는 저런거 받아서 무엇하랴 싶어 '해주실 필요 없습니다.'라고 이야기하였는데, 막상 패를 받으니 그래도 내 군생활, 나라에 대한 의무의 이수가 여러사람들에 의해 확인된 것 같아.. 정말 내가 전역하는 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20대의 마지막을 군대와 함께 보냈다. 군대에 온것. 내 선택이었기에 그만큼 힘들때 버틸수 있기도 했지만, 그만큼 내 자신을 참 많이도 책망했던 기억이 있다. 남들 앞에선 의연한 척 했지만...전역을 한다니 그 힘들었던 시간들이 떠올라.. 그때의 내 자신을 생각하면 괜시리 눈물이 난다. 참 많이도 힘들어했었으니까.
그래도..
최근들어 군대를 일찍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이벤트. 여자친구와의 사귐.
군대를 일찍 왔기에 앞으로 인생의 milestone을 함께 밟아 나갈 수 있다는 그 사실때문에라도 힘들고 고민많았던 그 모든 시절이 보상이 되는 것 같다.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니까. 그거면 됐지.
하루종일 한참을 우울해 했다가..
이렇게 글을 쓰고 나니 이제야 좀 ventilation이 되는 것 같다.
나쁜 기억을 이렇게 다 쏟아내었으니 지금부터는 기쁘고 좋은 기억만 갖고.. 앞으로의 미래만을 바라보며 정진해야겠다.
앞으로는 행복한 일만 가득할거야. 암. 그럼.
이런 이야기를 하긴 좀 뭐하지만 많은 수 군인들의 특징이라면 떠날때'만' 잘해준다는 것이다. 전역전에 하는 온갖 노고 치하와 축하를 듣곤 하면 과연 '이 사람들이 진심으로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어떻게 평소에 나에게 그렇게 대할 수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라 생각하는건지. 아니면 전역 후에 민원이라도 넣을까봐 그러는지. 물론, 여기에 적힌 현 대대장님은 군생활 3년동안 만난 지휘관들 중 제일 좋은 분이므로 제외.
휴가를 끝내고 부대로 복귀한 아침, 마치 군 부대를 방문한 일반인의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모든 풍경이 그리도 생경한지..
병원에 있은 며칠 간의 생활이 군대라는 곳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한 것 같다.
저녁에 부대를 나서며 2년간 있었던 군의관실 문을 닫고 나오는데, 빈 군의관실을 보면서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치솟았다.
채 세네평이나 될까. 그런 조그마하고 허름한 공간에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고민과 결정을 했었다는 사실에..
더구나 그 공간은 의무대를 옮기며 내가 직접 도안하고 작업하여 만든 공간이었기에 더 정이 갔으리라. 그 공간에서 내 인생의 많은 중요한 일들을 고민하고 결정했던 것 같다. 진로에 대한 고민, 미국의사국가고시 시험 준비, 연애와 결혼에 대한 진지한 고찰, 성형외과 합격의 소식. 그 모든 일들이 그 방에서 이뤄졌다. 아무튼 허름하고 방음도 안되고 단열이라는 말이 사치로 느껴질 정도의 그 공간임에도 나름 정이 많이 들었나보다. 군생활을 그렇게 싫어하였음에도 그런 섭섭한 감정을 느낀 것을 보면.
군대에 처음 왔을때는 27세였는데, 군생활을 끝내는 지금. 30대가 되었다.
20대의 마지막을 함께한 군대.
아직도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군대에 가야 겠다는 결정을 내리던 인턴시절의 생각이 생생하다. 난 이 병원이 맞지 않는다고, 잘 할 자신이 없다고, 이곳에서 의사가 하고 싶지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남들이 다 말림에도, 갈 수 있는 곳이 많았음에도 끝끝내 뿌리치고 군의관으로 오던 그날을 기억하는데..
인턴때 생긴 back pain과 knee pain으로 찍은 MRI사진과 윤도흠 선생님의 소견서를 들고 처음 대전 군의학교로 신검을 받으러 가던 기억. 그곳에서 새벽 4시경에 찬혁이와 나와서 첫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던 기억. 버스타고 학교 앞을 지나다가 핸드폰으로 확인한 ARS에서 육군으로 배정되었다는 메시지를 들었던 기억. 3사에 처음 입소할때 머리를 빡빡깎고 들어가면서 '그래. 내가 원하던 것들 모두 이루고 말리라'고 다짐했던 기억. 힘든 훈련 기간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ventilation하던 기억. 사격 훈련에서 20발중 19발 맞췄던 기억. 양평쪽 부대에 배치받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적응장애'를 느꼈던 기억. 매일매일 사는게 미치도록 힘들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차라리 이렇게 사느니 죽는게 낫겠구나 싶었던 기억. 그럼에도 '나는 내 스스로 선택해서 온 것이야'라고 생각하면서 의사로서의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 무척이나 애썼던 기억. 퇴근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와서 혼자 식사를 해먹으며 공부를 하다가 뒤를 돌아보면 텅 빈 방에 나만 외로이 있는 그 현실에 남몰래 눈물도 흘렸던 기억. 군대와서 '그래. 나는 의사야.'라는 생각을 잃게 해주지 않았던 고마운 시험, USMLE 시험을 처음 보던 기억. 군의관 1년차 마지막에 병사 하나가 자주포에 압사하여 그 뒷수습을 하던 기억.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인격모독을 하던 지휘관에 대한 기억. 2년 여간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성형외과를 해야 겠다는 결심을 하던 그 순간. 교수님들께 인사를 다니면서 교수님들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 일희일비 하던 기억. 면접때 자화상을 그리게 한다고 군의관실에 앉아서 몇날 몇일동안 잘 그리지도 못하는 그림을 그리며 A4용지 수십장을 쓰던 기억. 지금의 여자친구를 보고 싶다고 매일 밤 늦은시간에 몰래 여자친구를 만나러 다녔던 기억. 군의관 모임을 조직하여 정기모임을 주최하던 기억.
적어보면 참 많은 일들이 군생활 동안 있었고..
군대라는 곳이 나를 참 많이도 변하게 만들었다. 특히나 '인생의 가치'란 것에 대한 생각을 참 많이도 바꿔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원하는 과에 합격하기만 한다면 참 행복할 줄 알았는데..
기쁘기도 하지만, 아쉬움과 슬픔이 교차하는 묘한 기분의 오늘이다.
군대에 있는 동안 '부정(denial)'이라는 방어기제를 참 많이도 썼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군생활에 대한 기록사진이 거의 없는데..
저 촌스런 전역패가 내 군생활을 증명하는 몇 안되는 기록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전역패를 해주겠다고 했을때는 저런거 받아서 무엇하랴 싶어 '해주실 필요 없습니다.'라고 이야기하였는데, 막상 패를 받으니 그래도 내 군생활, 나라에 대한 의무의 이수가 여러사람들에 의해 확인된 것 같아.. 정말 내가 전역하는 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20대의 마지막을 군대와 함께 보냈다. 군대에 온것. 내 선택이었기에 그만큼 힘들때 버틸수 있기도 했지만, 그만큼 내 자신을 참 많이도 책망했던 기억이 있다. 남들 앞에선 의연한 척 했지만...전역을 한다니 그 힘들었던 시간들이 떠올라.. 그때의 내 자신을 생각하면 괜시리 눈물이 난다. 참 많이도 힘들어했었으니까.
그래도..
최근들어 군대를 일찍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이벤트. 여자친구와의 사귐.
군대를 일찍 왔기에 앞으로 인생의 milestone을 함께 밟아 나갈 수 있다는 그 사실때문에라도 힘들고 고민많았던 그 모든 시절이 보상이 되는 것 같다.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니까. 그거면 됐지.
하루종일 한참을 우울해 했다가..
이렇게 글을 쓰고 나니 이제야 좀 ventilation이 되는 것 같다.
나쁜 기억을 이렇게 다 쏟아내었으니 지금부터는 기쁘고 좋은 기억만 갖고.. 앞으로의 미래만을 바라보며 정진해야겠다.
앞으로는 행복한 일만 가득할거야. 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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